본문 바로가기
백두대간 종주/백두대간(남)[完]

백두대간 18차 제19구간 이화령~지름티재(천대510~514)_20150411

by 산엔달 2015. 4. 12.

매월 둘째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떠나는 대간산행~ 지난 달 기억이 아직 생생한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또한 작년 1월 첫 산행의 기억도 어저께 같은데 벌써 18차, 절반을 넘고 있다. 1년이 넘어서면서 둘째주말은 대간, 네째주말은 정맥산행이

이젠 생활화 된 듯 항상 기다려지고 설렘이 큰 삶의 중요한 한 부분이 된 것 같다. 더우기 봄이 시작되면서 겨우내 기다렸던 예쁜 야생화를

만날 기대에 더욱 기다려 진다.

이번 구간은 문경 이화령~지름티재 구간으로 천안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 출발시간이 3시반으로 좀 늦다.

이른 새벽에 출발을 하다보니 깜박 졸다 출발시간을 놓치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이번엔 예정시간 보다 좀 늦게 산행을 시작하여 대간산행 처음으로 헤드렌턴을 켜지 않고 산행을 시작한다. 또한 이번 구간은 도상거리 18km로 비교적 길지 않는 구간이며, 백화산까지 약8km는 육산으로 비교적 쉬운 코스이며, 그 이후는 암릉이 약간씩 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조망이 좋고 또한 산림청 선정 100대 명산 중의 하나인 희양산이 있는 멋진 구간이다.

 

* 산행일시 : 2015. 04. 11 (06:14~13:25) 구름한점 없이 맑고 따뜻한 날씨

* 산행거리 : 22.3km, 7시간 11분 소요 (대간 능선이 아닌 시루봉 왕복 포함)

* 누 구 랑 : 천토산 백두대간 3기 57명

* 코     스 : 이화령 ~ 조봉(673m, 천대510) ~ 황학산(912m, 천대511) ~ 백화산(1,064m, 천대512) ~ 평전치 ~ 사다리재 ~ 곰틀봉

                ~이만봉(990m, 천대513) ~ 배너미평전 ~ 시루봉(914m, 천대514) ~ 희양산 사선봉(964m) ~희양산(999m) ~ 지름티재 ~ 은티마을

 

▲ 희양산 정상~ 희양산(曦陽山)은 동·서·남 3면이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돌산으로, 암봉들이 마치 열두판 꽃잎처럼 펼쳐져 있다. 옛날 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다. 봉암사를 창건한 신라 헌강왕 때의 고승 지증대사가 전국 명산을 둘러본 뒤 희양산 한 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펴보니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 하다"고 지세를 평하며 감탄한 산이라고 전한다. 그래서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르고 있어 ‘봉암용곡(鳳巖龍谷)’이라 하였다.

희양산은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암봉이다. 그 자태가 우뚝하고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는 데다 바위 낭떠러지들이 하얗게 드러나 있어 주변의 산에서 뿐만 아니라 먼 산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산이다.

▲ 코스도

▲ 고저도

▲ 이화령에 도착, 출발 인증샷~

▲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 터널을 지난다

 

 

▲ 출발하는데 일출이 솟아오른다. 오늘 늦긴 좀 늦어나 보다. 헤드렌턴도 켤 필요없이 출발한다.

▲ 날씨가 좋아 오늘도 일출이 넘 멋지다.

 

 

 

 

 

▲ 터널을 지나 오른쪽으로 대간이 시작되는 입구~

▲ 이화터널이 아래보인다

▲ 철조망으로 막혀있어 약간은 둘러 올라야 한다.

▲ 이제 본격적으로 출발~

 

▲ 주흘산 자락에서 떠오른 일출이 넘 멋지다.

▲ 조봉~ 이화령의 옛이름인 ‘(큰)새재’의 뒷산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낙영산과 이웃해 있는 조봉산은 충북 괴산군 청천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으며 각종 기암괴석으로 조각된 듯한 바위만물상들이 마치 새의 입부리처럼 뾰족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하여 산 이름을 조봉산이라 지었다.

 

▲ 황학산~ 조망이 뛰어난 산이다. 새재길이 통과하는 상초리계곡과 주흘산, 부봉, 마폐봉, 조령산, 멀리 월악영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동쪽으로는 조령천을 따라 조성된 농경지와 문경의 단출해 보이는 시가지가 펼쳐진다. ‘황두루미’가 둥지를 틀은 산이다.

▲ 백화산 오르는 길에 있는 멋진 고목

▲ 옥녀봉 갈림길~ 다녀올 수도 있는데... 2.6km라 넘 멀다.

 

▲ 백화산 정상이다. 백화산은 이화령에서 잠시 숨을 죽인 백두대간이 속리산을 향해 치달리기 전에 솟구친 산이다. 백두대간이 문경쪽으로 한참을 치고 들어갔다 빠지는 말굽새 모양을 하고 있고, 백화산은 그 정점에 위치해 있어 흔히들 봉황이 나는 형국에 비교하곤 한다. 특히 문경쪽으로 바라보는 정상부는 암릉으로 되어 있어 부리 구실을 하고 정상은 새가 하늘을 날며 땅을 굽어보듯이 천지간의 산과 들이 한눈에 내려다 뵈는 조망의 명당이다. 백화산은 봉황이다. 성인을 따라 세상에 나타난다는 봉황의 수컷이다. 그 발치에 봉생(鳳笙), 왼쪽에 봉황이 울었다는 봉명산(鳳鳴山),오른쪽에 신라시대 고찰인 봉암사(鳳岩寺)를 두고 뒤로 이화령과 시루봉으로 날개를 펼친 거대한 새다. 4단으로 된 정상남벽에는 근동 사람들이 명당자리로 꼽는 기도터가 있다. 깎은 듯한 절벽, 보면 볼수록 하늘이 다가오는 듯한 벼랑 아래 눈비 가릴 만한 감실이 마련되었다.

▲ 정상 인증샷

 

 

▲ 평전치~ 남쪽 사면은 벼랑에 가까운 경사를 보인다. 지형적인 영향으로 사철 바람이 강하게 분다. 분지리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오른쪽으로 내려간다. ‘평평한 산밭’이라는 뜻인데 실제의 지형은 전혀 딴판이다.

平田峙. 마을 사람들이 쓰는 이름은 ‘평밭등’이다.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곳은 연풍 분적골 사람들이 마성면 상내리 쪽으로 내려가던 고개였으나 지금은 폐로가 되어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다. 이곳 상내리의 한신마을은 마원리, 중평리, 여우목마을, 연풍지역과 더불어 천주교 성지로서 백화산 일대 대간 능선을 넘나들며 선교활동을 펼쳤던 곳으로, 1866년 병인박해 당시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허기진 몸을 숨겼던 첩첩산중 천혜의 은신처였다 한다.

 

▲ 선두팀이다.

▲ 한참을 치고 올라서니 곰틀봉이다.

▲ 곰틀봉~ 정상석은 없고, 고목에 누가 써 놓았다. 꿈틀꿈틀이라 꿈틀→곰틀이 되었다는 설과, 옛날에 곰을 잡던 틀을 놓던 봉이라 곰틀봉으로 불린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한 증거는 없다.

▲ 지나온 백화산 능선이다.

▲ 문경 원복리 방향

 

▲ 이화령 넘어 조령산 방향~

▲ 저 뒷쪽산이 주흘산

▲ 이만봉 정상 인증샷~ 이만봉(二萬峰)은 옛날 임진왜란 때 이곳 산골짜기로 2만여 가구가 피난을 들어와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옛날 만호라는 벼슬을 한 이씨가 이곳에 살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두가지 설이 있다. 이만호골이 시작되는 도막은 임진왜란 당시 도원수 권율이 군막을 쳤다 해서 붙여진 지명이다. 충북과 경북을 가르는 경계선에 있으며 괴산군에서 최고봉인 백화산과 희양산의 중간에 위치한다. 독립된 산이기보다는 황학산, 백화산, 시루봉,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거대한 능선으로 표시된다.

 

▲ 지나온 능선~ 오른쪽 끝봉이 황학산인 듯~

▲ 주흘산 방향

▲ 희양산이다.

 ▲ 시루봉 갈림길~ 배낭을 여기에 두고 다녀오기로 한다.

시루봉은 어디에서 보아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산이다. 멀리서도 떡시루를 거꾸로 엎어 놓은 것처럼 정상부의 바위지대가 금방 눈에 띈다.

천연기념물 제 292호로 지정된 반송이 있는 문경시 농암면 화산 2리에 위치한 시루봉은 높이가 876.2m로 여느 높은 산에 비해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정상은 장엄한 암벽으로 되어 있어 조망이 좋고 가슴까지 탁 트이는 전망대로 이 산의 가치를 톡톡히 한 몫 해내고 있다. 특히 시루봉에서 서쪽 방향으로는 신라의 전통사찰인 원적사와 백두대간의 명산으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다는 우복동이 있다는 청화산으로 능선이 이어지고 있으며, 동편으로는 연엽산과 능선이 이어지고 있다.

시루봉은 가뭄이 들었을 때 기우제를 지내던 기우단(祈雨壇)이 있던 곳으로 문경현지 등 옛 문헌에는 불일산(佛日山)이라 기록하고 있는데『불일산은 가은현 서남 20리에 있고 화산(華山, 즉 청화산)에서 뻗어 왔으며 기우단이 있다』고 되어 있다. 기우단이 있던 곳은 지금의 쌍룡터널 위 봉에 그 터가 남아 있다.

▲ 정상 인증샷

▲ 선두팀 단체 사진

▲ 시루봉에 있는 돌탑

▲ 이화령과 그 뒷편 조령산이 한 눈에...

▲ 그 오른쪽으로 주흘산이 보인다.

▲ 시루봉 정상 부근의 고사목

▲ 시루봉 갈림길로 다시 돌아와 앞 봉우리를 오르니 사선봉이다.

▲ 사선봉을 내려오면 은티마을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 희양산 방향으로 계속 이어가고...

▲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오르고 내림이 심하다. 지나온 봉우리를 담아본다

▲ 지나온 이만봉이다.

▲ 희양산성인 듯~ 동국여지승람과 증보문헌비고에는 ‘희양고성은 가은현 북쪽 15리에 옛 성이 있으니 삼면이 모두 석벽(石壁)이며 옛 군창(軍倉)이 있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약 1300m가 되는 이 산성은 신라와 후백제가 국경을 다투던 접전지로 929년 경순왕 3년에 쌓은 성터로 전해진다.

▲ 능선에 이런 크고 긴바위가 멋지다

 

▲ 여기서도 은티마을로 내려서는 길목이 있다. 2010년 9월에 아내랑 이 산을 찾았을 때, 이 길로 올라왔었다.

▲ 희양산성이 이어지고~

▲ 여기서 오른쪽 방향인 구왕봉 가는 길이 대간길이다. 잠시 희양산을 다녀온다. 

▲ 첫 봉우리에 올라서니 앞의 구왕봉이 전망된다.

 

 

▲ 희양산 가는 능선에 이런 멋진 바위도 있다.

▲ 희양산 정상석이 새로 생겼다. 최근에 세운 듯~

▲ 정상석 뒷편은 한문으로...

▲ 희양산 정상 인증샷을 남기고...

희양산(曦陽山)은 동·서·남 3면이 화강암 암벽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돌산으로, 암봉들이 마치 열두판 꽃잎처럼 펼쳐져 있다. 옛날 사람들은 희양산을 보고 ‘갑옷을 입은 무사가 말을 타고 앞으로 나오는 형상’이라고 했다. 봉암사를 창건한 신라 헌강왕 때의 고승 지증대사가 전국 명산을 둘러본 뒤 희양산 한 복판 계곡으로 들어가 지세를 살펴보니 "산은 사방에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으니 마치 봉황의 날개가 구름을 치며 올라가는 듯하고 계곡물은 백겹으로 띠처럼 되었으니 용의 허리가 돌에 엎드려 있는 듯 하다"고 지세를 평하며 감탄한 산이라고 전한다. 그래서 봉황과 같은 바위산에 용과 같은 계곡이 흐르고 있어 ‘봉암용곡(鳳巖龍谷)’이라 하였다.

희양산은 문경시 가은읍과 충북 괴산군 연풍면의 경계를 이루고 문경새재에서 속리산 쪽으로 흐르는 백두대간의 줄기에 우뚝 솟은 신령스러운 암봉이다. 그 자태가 우뚝하고 산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바위처럼 보이는 데다 바위 낭떠러지들이 하얗게 드러나 있어 주변의 산에서 뿐만 아니라 먼 산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는 산이다.

▲ 예전 정상석과 새로 세운 정상석을 배경으로~

▲ 희양산 정상에서 본 지나온 이만봉과 백화산 방향 파노라마~

 

 

▲ 희양산 정상의 멋진 바위

▲ 이만봉과 백화산 방향

▲ 희양산 정상 절벽에 서 있는 멋진 소나무~

▲ 다음 구간이 악휘봉 방향이다

▲ 구왕봉을 배경으로

 

▲ 희양산 능선의 멋진 바위~

 

 

▲ 하늘을 걷는 기분~~~

▲ 바위 끝의 멋진 소나무를 배경으로

 

▲ 다음 구간의 악휘봉과 그 뒤 멀리 보이는 산이 속리산인 듯 하다.

▲ 북한산의 여성봉을 닮았다.

 

▲ 희양산 정상 부근의 이어지는 바위~ 이런 바위가 있어 멀리서 보면 온통 바위산으로 보이는가 보다

 

▲ 구왕봉을 다시 한번 담아본다.

▲ 구왕봉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의 시작이다.

▲ 100m 이상을 내려서야 하는 절벽이다. 이 밧줄을 잡지 않으면 내려가기 힘들 듯하다

▲ 중간쯤 내려서서 내려온 위를 올려다 보며~ 

▲ 절벽을 내려서니 봉암사로 내려가지 못하게 이런 장애물을 설치해 놨다.

▲ 지름티재~ 구왕봉과 희양산 사이에 위치하며,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북리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주진리의 경계를 이룬다. 주진리 은티마을에서 오르는 등산로는 잘 나 있으나 봉암사쪽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고갯마루에는 서낭당이 있으며 은티마을에서는 매년 정월에 제사를 지내고 관리를 하고 있다. 지름티재는 은티마을에서 봉암사로 갈 때 질러가는 고개라는 뜻에서 생긴 이름인데, 전혀 의미가 다른 유치(油峙)로 변천되어 쓰이기도 한다. 이 고개 역시 봉암사의 산문폐쇄로 봉암사로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으며, 서낭당은 서낭나무를 중심으로 둥글게 돌담을 쌓아올린 제단으로 돌담 높이는 30~50㎝이다.

 

경북 문경시 가은읍에서 들어가는 봉암사 코스는 일반관광 및 산악인들의 출입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다. 1982년 6월 봉암사 스님들이 전국 사찰이 관광지가 되고 훼손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야 한다는 운동을 전개, 특히 희양산 봉암사 주변의 등산 및 관광코스를 철저하게 폐쇄하고 난 다음부터이다. 봉암사는 조계종 특별수도원으로 지정돼 있으며, 봉암사에서 백두대간 마루금까지 사이에 있는 임야의 대다수가 봉암사 소유이기도 하며, 지름티재와 은티마을 위쪽의 등산로, 희양산 정상부 등지에 봉암사 스님들이 지키고 서서 산에 오르는 것을 막고 있다.

봉암사는 평소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으나 일년에 단 하루, 사월초파일에만 문을 개방해 사찰과 사찰내의 문화재를 구경하기 위한 전국에서 찾아온 인파로 매년 북새통을 이룬다.

▲ 은티마을로 내려오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다

▲ 산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이런 비석이 있다

 

 

 

▲ 은티마을 주막집이 있는 다리 부근~ 왼쪽의 비닐하우스 건물은 새로 지은 듯 하다.

▲ 막걸리 담은 양은주전자와 산악회 리본이 장관이다

▲ 은티마을의 유명한 주막집이다

▲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

 

▲ 은티마을 유래비~ 은티마을 입구에 세워놓은 은티마을 유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은티마을은 연풍면 소재지에서 남쪽으로 약 4㎞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東은 중리부락, 北은 심풍리, 南은 경북 가은에 접하고 있고,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연풍현 당시 현내면 인지동에 속해 있었으며, 1812년 작성된 동절목(洞節目)에는 인지동 의인촌리(義人村里)로 기록,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후 왜인들이 義人은 한국의 민족정신이 함유되었다 하여 은티(銀峙)로 개칭,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周峙洞, 榛村, 鷹岩, 鳥峰, 中里를 병합, 주치와 진촌의 이름을 따서 주진리라 하였으며, 8.15 광복 후 행정구역 세분화에 따라 주진리를 3개 마을로 나눠 그중 우리마을을 은티라 칭했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은티는 女宮穴에 자리하고 있어 동구에 남근(男根)을 상징하는 물체를 세워야 마을이 번창하고 주민들이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하여 동구 송림안에 남근석(男根石)을 세워놓고 매년 정월 초 이튿날을 정제일로 마을의 평안과 동민가족 모두의 안녕을 기원하는燒紙를 올리며 祭가 끝나면 한자리에 모여 음복하고 제물을 나눠먹는 동고사를 지내고 있다.

서기 1996년 6월 20일. 은티마을 동민일동

[은티마을]

은티 마을은 여느 산골 마을처럼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그래서 그 형세가 마치 여성의 성기와 같은 여근곡(女根谷)이다. 이를 여궁혈(女宮穴)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 기를 죽이기 위해서 마을 초입의 가겟집 앞 노목 아래에 남근석을 세워 놓았다. 여근과 남근을 합체시킴으로써 음양의 조화를 꾀할 수 있는 인식 때문이다. 물론 아들을 많이 낳을 수 있다고 한 것은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남근석은 하나의 선돌을 세운 것이 아니다. 약 120㎝짜리 남근석을 가운데 세우고 그 옆으로 조그만 돌들을 세워서 아기자기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지난 마을 제의 때 쳐놓은 금줄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주위에는 아름드리 전나무가 세워져 있는데 300∼400년 정도 된 것이라고 한다.

이 남근석에 대한 제의가 매년 섣달 20일에 행해지며, 이를 ‘동구제(洞口祭)’라고 부른다. 아마 마을 입구에 세워져 있기 때문에 붙인 명칭인 듯하다. 음식을 장만하는 주판집과 지관, 축관 등 4명을 선출해서 제사를 올린다. 대개 농사가 잘되고 동네가 화목하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현재 거주하는 28가구의 대주(大主·바깥주인)를 위한 소지를 올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 삼국유사 여근곡 이야기

여근곡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에도 나타난다. 신라 선덕여왕은 세 가지의 일을 미리 알아냈는데, 그 중 하나가 여근곡에 숨어 있던 백제 병사를 찾아낸 일이다. 즉 겨울인데도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서 개구리가 울었다고 한다. 이것을 들은 여왕이 군사를 여근곡에 보냈다. 그곳에는 경주를 습격하기 위해 백제 병사들이 숨어 있다가 전멸됐다. 게다가 이들의 후미에 있던 병사까지 몰살됐다고 한다.

개구리가 우는 것은 남자가 성냄을 뜻하는 것이요, 옥문은 여성을 의미한다. 그래서 여근곡에 병사가 숨어 있음을 알아내고 이들을 쉽게 제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선덕여왕은 ‘남자의 성기가 여성의 성기로 들어가면 필경 죽는다(男根入於女根則必死矣)’라고 하는 설명으로 대신했다. 매우 탁월한 표현법이 아닐 수 없다.

▲ 주차장~

 

▲ 뒷풀이 장소인 괴산읍내에 있는 우리 매운탕집

 

▲ 양도 많고 맛이 있다.

 

 

 

 

  

[이번 구간에서 만난 야생화]

▲ 현호색~ 꽃말이 비밀, 보물주머니라네요~ 뭔가 비밀을 간직한 것 처럼 보이나요~

 

 

 

 

 

▲ 이 현호색은 보라빛이 난다.

▲ 노루귀~ 바위아래 숨어 겨유 찾았다는... 잎모양이 노루 귀를 닮았다하여 노루귀라고...

꽃말은 "당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뢰한다"라네요~

▲ 노랑제비꽃~ 꽃말이 '수줍은 사랑'입니다. 올 봄 가장 먼저 만난 야생화입니다.

 

 

▲ 원추리 새싹 

▲ 가는잎그늘사초~ 이번 산행길에서 가장 많이 본 꽃이다.

 

▲ ???

▲ 산괴불주머니~ 꽃말 '보물주머니'랍니다.

 

 

 

 

 ▲ 민들레~ 행복, 감사하는 마음이 꽃말입니다.

 

▲ 산 정상 부근엔 아직 진달래가 꽃망울도 보지 못했는데, 산아래 마을 근처엔 만개하였다.

 

▲ 매화꽃

▲ 꼬깔제비꽃

 

 

 

▲ 주차장 부근의 매화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