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 모든 일이 계획대로 척척 진행된다면 항상 재밌고 행복한 일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듯 싶다. 실패가 있어야 성공이 더 값진 것 처럼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닥쳐 이를 슬기롭게 잘 해결해 나감으로서
그 일이 더욱 보람되고 오래토록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듯 싶다.
대간길도 그렇다.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아무 제약없이 자유롭고 즐겁게 탐방하고 싶지만, 생태계 보존이란 명목하에 일부 구간을 비법정 탐방로 정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필요성 충분히 느낀다. 실제 산행을 하다보면 극히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소행으로 불쾌감을 느낄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경우를 종종 보게된다. 그렇다고 무작정 출입을 통제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닌 듯 싶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지만 갈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국공직원들과의 숨바꼭질을 하며 몰래 다 다닌다. 서로가 할 짓이 아니다. 통제를 하니 길이 아닌 다른 곳으로 둘러 다니고 해서 더 훼손되는 것이다. 한밤중에 시작하다 보니 안전에도 문제가 많고... 차라리 양성화하여 등산로를 만들어 정해진 그 길로만 다니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정해진 등산로를 벗어나거나 무분별하게 음식을 요리해 먹는 다든지 하는 것을 철저히 단속하고... 괜히 넉두리를 좀 했다.
이번 산행도 원래 계획은 22구간 늘재~비재까지 속리산이 있는 구간이었다. 늘재에서 문장대까지가 비법정 탐방로라 다른 구간 산행보다 좀 일찍 시작하고자 서둘러 늘재에 도착했는데, 새벽2시부터 국공직원들이 마중(?)나와 있었단다. 누군가의 신고로 인하여 단속하지 않을 수 없단다. 단속한 증거도 남겨야 하고...서로가 무슨 짓인지 모를 시츄에시션이다. 신고한 사람은 또 어떤 사람인지...누굴 탓해야 될지 모를 지경이다.
그렇지만 대간산행의 장점이 뭔가~ 막히면 돌아가면 된다. 우리가 가야할 다음 구간이 있는 것이다. 이 또한 대간산행의 묘미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돌아선다. 후일담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이번 구간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볼거리가 별로 없다. 좀 특이한 것은 사서삼경 중 '대학'에 나오는 '윤집걸중(允執乞中)'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로 '인생 전반을 다안다, 세상을 포용한다.'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는 '윤지미'라는 이름의 재밌는 산이 있다.
이 산을 오르는 길은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된비알로 그야말로 도를 통하기엔 부족함이 없는 듯 하다.
* 산행일시 : 2015. 07. 11(04:30~10:30) 구름이 많다 점점 맑아짐
* 산행거리 : 19.6km, 6시간 소요
* 누 구 랑 : 천토산 대간3기팀 60명
* 코 스 : 비재 ~ 봉황산(741m, 천대536) ~ 화령재 ~ 윤지미산(538m, 천대537) ~ 무지개산(441m) ~ 신의터재
▲ 봉황산을 내려서면서 멋진 운해를 배경으로...
▲ 산행지도
▲ 출발지점인 비재는 나는 새의 형국이라 하여 비조재, 비조령이라 불렀으나, 근래에 와서 비재라는 이름으로 굳어졌다 한다.
▲ 봉황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새벽 운무가 반겨주고 높은 습도로 인하여 흐르는 땀이 장난이 아니다.
▲ 이번 구간의 최고봉인 봉황산 정상~ 봉황산은 말 그대로 봉황이 살았다는 유래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전설에 의하면 1300년전에 봉황이한 30년 정도 살았단다. 또한 중종의 태를 묻었다는 전설에 힘입어 마을에서 태봉산(胎封山)이라 부르는 봉황산은 송천을 발원시키는 화령의 진산(鎭山)이다. 일설에는 봉황산 장군이 싸움에 이겨서 봉황산, 반면 싸움에 진 장군이 있는 산은 원통산(596.9m)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 봉황산을 내려서니 확 터인 조망이 나타나고 환성적인 운해가 펼져진다.
▲ 소나무길 능선은 피톤치드로 가득하여 보약이 따로 없다.
▲ 대간길 곳곳에 이런 팻말이 있다.
▲ 드뎌 화령재가 가까워졌다.
▲ 산길을 내려서니 이런 도로가..
▲ 도로를 따라 한참을 올라간다.
▲ 내려온 뒤쪽을 바라보며~
▲ 완만하게 올라온 고개길~
▲ 넓은 공터가 있는데 이런 커다란 대간길 화령재 알림 표석이 있다.
백두대간 1,425km 중 상주 구간은 69.5km이며 화령은 고려 때 이곳 일대를 관할하던 화령현(化寧縣)의 지명이다. 택리지에는, “상주 서쪽은 화령(火嶺)이요 고개 서쪽은 충청도 보은인데 화령은 소재 노수(1515-1590)의 고향”이라 하여 소백산맥의 줄기를 타고 북으로 조령, 남으로 추풍령과 연하여 화령으로 불려 왔다고 전한다. 신라 때는 연비군(蓮匕郡), 경덕왕 때에는 화령군(化寧郡), 화령이란 지명은 고개 이름인 火嶺에서 연유된다. 고려 때에는 화령현으로 지금은 화서면이다. 북쪽은 봉황산을 거쳐 속리산 문장대로 남쪽은 국수봉으로 이어지며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룬다.
화령재는 火嶺으로 표기하는데 옛지명은 化寧이다. 火嶺이란 이름에 대해선 삼국시대부터 삼국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움이 많이 일어난 국경지역이고 김유신 장군이나 후백제의 견훤이 중요시 여겼던 군사 요충지였으며, 6.25때에도 이 지역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하여 불火자를 붙였다는 이야기가 있다.
▲ 오랜만에 단체사진을... 정맥 시작할 때 찍은 현수막이다.
▲ 화령재의 또 다른 표석
▲ 화령재에서 윤지미산을 오르기 위해 이어지는 길목에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라는 표지가 있다.
▲ 선두그룹이다. 약간의 임도를 걷는다.
▲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 윤지미산 정상~ 정상을 오르는 길은 엄청난 된비알이다. 원래 소머리산이라고 하였으나, 언제부터인가 윤지미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는 사서삼경 중 대학에 나오는 윤집걸중(允執乞中)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로써 “인생전반을 다 안다, 세상을 포용한다, 세상을 두루 알아맞히다”라는 의미를 가진 산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지장봉으로도 불린다.
▲ 윤지미산 정상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있는 선두그룹~
▲ 무지개산 정상~ 무지개산은 백두대간 마루금에서 살짝 비켜있는 육산이다. 야트막하면서 빼어난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무지개만큼이나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는 그러한 산의 하나다. 밤원고개 북쪽의 발치는 갈령에서 남하한 상주에서 가장 긴 내 이아천이 살짝 핥다가 함창으로 북진한다. 밤원에서 하우산까지의 소위 우산(愚山) 칠리강산(七里江山)의 시작인 것이다. 산이름은 정상 남쪽 골짜기의 폭포에서 유래했다. 무지개산에는 아름다운 무지개폭포가 있으며, 주변에는 낙화담, 철새도래지, 판곡저수지 등이 있다.
▲ 무지개산 갈림길
▲ 목적지인 신의터재를 약2km 정도 남겨두고 가방털이를 한다.
▲ 드뎌 신의터재에 도착
▲ 이런 표석도 있고...
▲ 도착 인증샷을 남기고...
▲ 이 표석 뒤에는 신의터재 내력에 대해 적혀 있다.
이 고개는 ‘지방의 관리나 귀양중인 옛 벼슬아치들이 나랏님(御)으로부터 승진, 도는 복직 등 좋은 소식(義信)이 오기를 기다리던 고개’였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어산리로 넘어가는 고개라하여 ‘어산재’라고도 불린다.
임란 이전에는 ‘신은현’ 이라 불리었고, 임란때 의병장 김준신(金俊臣)이 이곳에서 의병을 모아 최초의 의병장이 되어 상주진에서 많은 왜군을
도륙하고 임란 4월 25일 장렬하게 순절한 후부터 이곳을 신의터재라 불리었다. 왜군들이 김준신 의장의 고향인 화동면 판곡리를 찾아 김씨 일문을 멸하려 하자, 부녀자들이 몸을 던진 곳이 낙화담이라 한다. 이곳에는 고 이은상 선생의 비가 있다. “집은 무너져도 나라는 살아나네.. 꽃은 떨어져도 열매는 맺었다고 오늘의 낙화담 향기. 바람결에 풍기네...”
일제때 민족정기를 말살한다고 “어산재”로 개명되었고 문민정부 수립후 광복50주년을 맞아 옛이름을 되찾고 이곳에 표석과 의사비를 세워져 있다. 화동면 주민들은 화동재라고 부른다.
▲ 이런 정자가 있어 산객들의 쉼터로 멋지다.
▲ 더구나 수돗물이 나와 씻기에도 충분하고...
▲ 일행 중 친구분이 근처에 사시는 분이 계셔 지난 달에 이어 이번 달에도 시원한 수박이랑 맥주 등을 공수해 주셨다. 정말 감사드린다.
▲ 뒷풀이는 송어회로...
▲ 이 물고기는 향어
▲ 이 놈이 송어
▲ 이번 구간이 여태껏 대간 산행 중 가장 빠른 시간에 마친 듯 하다. 후미도 빨라졌고... 선두와 1시간반 정도 차이니...
뒷풀이하고 집에 왔는데도 5시정도다.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렇게 또 한 구간 진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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