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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백두대간(남)[完]

백두대간 26차 제26구간 추풍령~눌의산,가성산,황악산,여정봉,삼성산~우두령(천대581~586)_20151212

by 산엔달 2015. 12. 14.

12월인데 만추산행 같다. 맑은 하늘에 포근한 바람이 땀을 식혀 주는 산행하기엔 최적의 날씨다.

괘방령~추풍령 구간은 몇년전에 회사 동호회에서 산행했던 곳이고, 이번 구간의 최고봉인 황악산도 100대명산 산행시 올랐던 산이다.

가성산, 눌의산은 여름이어서 그런지 전혀 기억이 없다. 북진이 비교적 쉬운 코스라 하는데 우린 남진이다.

그래서 그런지 곳곳에 된비알이 있어 만만치 않는 코스다.

이렇게 2015년 마지막 대간길은 따뜻한 날씨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무사히 마감한다.

 

* 산행일시 : 2015. 12. 12 (06:18~14:00) 맑고 포근한 날씨

* 산행거리 : 23.2km, 7시간 40분 소요

* 누 구  랑 : 천토산 대간3기팀 58명

* 코      스 : 추풍령 ~ 눌의산(743m) ~ 장군봉(606m, 천대581) ~ 가성산(657m) ~ 괘방령 ~ 여시골산(620m, 천대582) ~ 운수봉(680m, 천대583) ~

                 백운봉(770m) ~ 황악산(1,111m) ~ 형제봉(1,044m, 천대584) ~ 바람재 ~ 여정봉(1,034m, 천대585) ~ 삼성산(986m, 천대586) ~ 우두령

 

▲ 이번 구간의 최고봉 황악산 정상 인증샷~ 황악산은 두번째다. 2010.2월에 100대명산 산행시 왔었다. 황악산은  ‘악(岳)’ 자가 붙었긴 했지만 산세는 지극히 순한 육산이다. 그래서인지 국토지리정보원의 1:50,000 지도에는 황학산(黃鶴山)으로 표기돼 있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 불렀다고 하며 지도상에도 흔히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대동여지도, 택리지 같은 문헌 및 직지사의 현판에 ‘황악산’으로 적혀 있는 걸 보면 황학산은 분명 오기인 듯하다.

굳이 ‘岳’에 대한 의미 부여를 하자면, 북에서부터 내려오는 대간의 줄기가 속리산에서부터 이렇다 할 산을 솟구치지 못하던 차에(속리산에서 황악산 사이에 1,000m가 넘는 산은 하나도 없다.) 1,111m나 되는 산을 만나고 보니 당연히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까. 또한 이 산이름의 첫 글자인 황(黃)은 오방색(五方色) 중 가운데를 나타내는 색인데, 옛 사람들도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명명했을 것 같다. 실제로 황악산은 삼면 바다를 기준으로 봤을 때 한가운데에 있다.

 ▲ 26구간 산행지도

 ▲ 고저도~ 눌의산 오름길과 황악산 오름길이 장난이 아닌듯~ 남진보다는 북진이 좀 쉬울듯~~~

 ▲ 새벽4시쯤 천안에서 출발하여 5시반쯤 추풍령휴게소 도착~ 잠시 야식? 거이 아침식사를 하고...어제 저녁에 마신 술 땜에 소화가 되지 않아 그냥 pass~

 ▲ 스트레칭으로 몸풀기하고 등산 준비도 여기서 마무리한다.

 ▲ 주차장에 세워진 우리일행 버스~

 ▲ 6시15분쯤 추풍령 노개 기념비 앞에서 출발 인증샷을 남기고...

 

 

 

 ▲ 도로를 따라 한참을 이동한다.

 ▲ 이런 굴다리도 지나고

 ▲ 여기서 왼쪽으로...

▲ 1시간여를 올라 눌의산 정상에 오른다. 추풍령 남서쪽에 솟아 있는 봉우리다. 직선거리로 2Km밖에 안 된다. 정상에 헬기장이 있고 낮은 구릉지에는 포도과수원이 조성되어 있다. 경부고속도로와 경부선 철도가 서쪽에서 접근하여 북쪽과 동쪽으로 돌아서 남쪽으로 향한다. 추풍령에서 벌판이나 다름없는 화령지역은 그 성질을 다하고 눌의산 이후로는 덕유산권이 시작된다. ‘어눌하게 생겼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인데, 결코 어눌한 모습이 아니다. ‘訥?山’으로 표기한 지도도 있다. 추풍령 뒤쪽에 자리잡은 산으로 등산인들의 발길이 뜸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이 산의 이름인 `눌의'는 한자어로 정의가 눌하다 혹은 더디다는 뜻이니 추풍령 영마루를 사이하는 충청도와 경상도의 양쪽 인정의 교류가 뜸하다는 것을 뜻한다. 정상에 봉수대가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주변 조망이 뛰어나다. 또한 옛날에는 요긴한 거점구실을 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나라에 긴급을 다투거나 외적이 침범했을 때 활활 타는 봉화를 피워 올려 제몫의 역할을 다했을 눌의산의 늠름함이 살아 있다.

 

 ▲ 눌의산 정상에서의 선두그룹~

▲ 일출이 솟아오른다. 해가 뜨는 방향에 나뭇가지가 있어 아쉽다. 

 

 

 

▲ 장군봉 정상~ 장군봉은 무사 장군이 아니라 장가 성씨의 총각 長君이라고 함. 그래서인지 유난히도 신갈나무 무성한 부드러운 육산이라는 설이 있으나 확실치 않음. 

 

 

▲ 가성산 정상~ 높은 산은 아니지만 독립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동북쪽 경사면에 김천시립 공원묘원이 있는데 규모가 꽤 크다. 동쪽 발아래로 고속도로와 철도가 경쾌하게 뻗어 있다. 동쪽의 가성마을과 외가성마을에서 유래하는 봉우리로서 ‘가성(枷城)’은 화령권의 ‘작점’이나 ‘사기점’처럼 소규모의 진지가 있었던 곳이다.

 

 

▲ 괘방령~

충북 영동군 매곡면과 경북 김천시 대항면을 잇는 977번 지방도로 위에 있는 고갯길. 이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이라 불리고 있다. 괘방령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때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를 알리는 방에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이 국가업무 수행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은 과거시험 보러 다니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로서 추풍령 못지않은 큰 길이었다. 특히 과거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추풍낙엽(秋風落葉)’을 연상시키는 추풍령보다는 급제자들의 이름을 거는 ‘괘방(掛榜)’이라는 이름 때문에 이 고개를 지나 다녔다고 한다. 인근 고을에 부임하던 관리들까지도 한사코 이 고개를 넘어 다녔다고 하는데. 그러나 이런 추측도 후대의 의미 부여이기가 쉽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괘방(卦方)’으로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의 지명 표기를 문제 삼지 않을 수 없다. 掛榜이든 卦方이든 한글 표기는 ‘괘방’이어야 하는데 ‘궤방’으로 적혀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오기로 보인다.

또한 이곳은 임진왜란 때 박이룡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황의사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곳이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정기가 잠시 숨을 고르다 황학산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 이길을 통해 수많은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한양으로 올랐다니 얼마나 많은 긴장과 또 다짐을 했던 것일까~~~ 마음이 숙연해진다.

▲ 여기서 아침을 먹고...

 

▲ 오른쪽 집이 괘방령 산장이다. 전원생활을 그리워하던 산장 부부가 가정집으로 지으려다가 산꾼들의 성화에 못 이겨 산장 아닌 산장이 되었다 한다. 부부가 손수 3년여 공사 끝에 2007년 11월에 완공. 아직 대간길에서 많이 알려지지 않아 산꾼들의 발걸음은 적은 편이지만 한번 다녀간 사람은 산장 부부의 넉넉한 인심에 시간을 내어 다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한다. 대간 상에 많은 산장이 있지만 대간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어 이용하기가 힘들지만 괘방령산장은 대간길과 접하고 있어 이용하기 편리하다.

젊은 시절 언더그라운드 기타리스트였던 괘방령 산장 주인과 부인이 산다고 한다.

 

 

 ▲ 여시골산 정상~ 현재 대간꾼들 사이에 여시골산(620m)이라 불리는 산은 운수봉과 괘방령 사이의 대간 상에 있다. 그런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오른쪽 가지줄기의 385.4m를 여시골산이라 표기하고 있다. 현지 조사를 통해 진위가 가려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여시골산이라는 이름은 ‘여우’의 경상도 사투리에서 비롯된 듯한데, 과거 이 산에 여우가 많이 살았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대간 등마루 위 오름길의 시작 부분에 여우굴 같은 동굴이 있다.

 

 

▲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 여시굴이다. 확 빨려들어갈 듯~ 

 

 

 

 ▲ 운수봉 정상~ 직지사의 부속 암자인 운수암의 북쪽 봉우리다. 직지사가 있는 능여계곡의 행정구역이 대항면 운수리이므로 마을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황악산 자락에 딸려 있는 조그만 봉우리인데 각종 이름에 차용된 것이 의아스럽다. 산 이름에 ‘물 수(水)’자를 쓰는 특이한 곳이다. 정상은 암장이다.

雲水峰. 언제나 구름이 머물고 골짜기에 물이 흐르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 황악산을 오르기 위한 마지막 오르막~ 

 

 

 

 ▲ 황악산 정상에 있는 백두대간 해설판

▲ 황악산 정상 인증샷~ 황악산(黃岳山)의 황자는 청(靑), 황(黃), 적(赤), 백(白), 흑(黑)의 5색(色) 중에서도 중앙색을 상징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황악산에 자리잡은 직지사는 예로부터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으뜸가는 가람이라는 뜻에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김천까지는 12km이고, 다시 김천에서 서울까지는 230km, 부산까지는 218km로서 남한의 중앙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 눌지왕 2년(418) 아도 화상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開創)되었다. 직지(直指)라 함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또 일설에는 아도 화상이 일선군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하여 직지사라 이름했다는 전설도 있다. 또는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 선두팀 단체사진~

 ▲ 화이팅도 외치고~~~

 ▲ 잠시 간식을 먹고 간다.

 ▲ 황악산 정상 부근~ 파란하늘이 넘 멋지다

 

 

 

 ▲ 가야할 형제봉과 여정봉 방향~

▲ 형제봉 정상~ 두 개의 봉우리가 사이좋게 나란히 있어 형제봉이라 불리는 듯하다.

 

 

 ▲ 저 멀리 높은 산이 아마 민주지산인듯~

 

 

▲ 바람재와 직지사로 갈라지는 갈림길. 여기서 우회전해야 한다. 

 

 ▲ 바람재 갈대밭

 ▲ 바람재에서 단체사진

 

▲ 바람재~ 바람이 불 때면 사람이 날아갈듯 많이 분다 해서 바람재.

바람재는 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새로운 무전기의 교신 거리와 성능을 실험하기 위해 종종 찾는 곳이다. 50W 정도의 출력을 내는 무전기로도 일본과 교신이 될 만큼 전파가 잘 터지는 곳인 바람재는 과거 주한미군이 주둔하기도 했다. 자동차 2∼3대가 겨우 올라 설 수 있는 꼭대기까지 길을 낸 것도 그들이었다. 발을 들여놓기 곤란할 만큼 망가진 데다 쓰레기투성이가 된 콘크리트 방카를 유산으로 남겨놓기까지 했다. 그들은 지금도 한 달에 한두 번 산을 올라와 몇 시간씩 머물고 돌아간다고 한다. 특히 미군이 개입하는 국제전쟁이 치러질 때면 봉우리에는 어김없이 미군들의 모습이 보인다고 했다. 유고내전이 한창이던 때에는 아예 며칠씩 상주하기도 했다. 그들의 성능 좋은 무전기로 유럽까지 교신이 가능하다는 소문이 돌게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바람재는 아마추어 무선사들만이 아니라 백두대간을 종주해 본 산꾼들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남으로 우두령에서 북으로 궤방령까지 긴 산길에서 유일하게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인 데다 목장까지 있어 산꾼들에게는 좋은 쉼터가 돼 온 탓이다. 해발 870m의 21만여평의 목장은 94년에 모습을 갖추었다. 겉으로 낭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하지만 목장에서 한국 축산업의 현주소를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목장에는 한 마리의 소도 없다. 마지막 14마리의 소까지 팔아치우면서, 이제 목장 주인은 흑염소다.

 

▲ 여정봉 정상~ 나무숲에 가려 조망을 볼 수가 없다. 

 

 

 

▲ 삼성산~ 동으로 진밭산, 동구지산, 덕대산 등이 조망되며, 서쪽으로 흥덕리의 깊은 계곡이 펼쳐져 있다.

 

 ▲ 갈대가 멋지다

 

 

 

 

 

 ▲ 드뎌 우두령이다.

 ▲ 이런 동물이동로도 있고...

 ▲ 산행 종료 기념 선두팀 단체 사진~

 

▲ 우두령~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이어주는 고갯마루다. ‘질매’라는 이름은 이 고개의 생김새가 마치 소 등에 짐을 싣거나 수레를 끌 때 안장처럼 얹는 ‘길마’ 같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질매는 길마의 이 고장 사투리다. 이 말이 한자화하여 우두령(牛頭嶺)이라고도 불리는 것인데,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두 이름이 별개인 양 둘 다 표기돼 있다.

▲ 다음 구간 들머리~ 

 

 

 ▲ 소 동상 뒷편에서~

 

 

 

 

 ▲ 버스가 있는 곳으로 조금 내려가고 있다.

 

 

 

 

 

 ▲ 물한계곡에 있는 뒷풀이 장소~

 ▲ 닭도리탕으로~ 오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