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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종주/백두대간(남)[完]

[천대632~633] 백두대간 33차 33구간 여원재~갓바래봉,수정봉,큰고리봉,만복대,작은고리봉~성삼재_20160709

by 산엔달 2016. 7. 11.

장마가 잠시 주춤하는 무더운 주말, 이제 마지막 한 구간 남은 대간 33차 33구간 여원재~성삼재 구간을 다녀왔습니다.

이렇게 많은 땀을 언제 흘려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 무더운 날씨였지만,

지리산 서북능선 파란 하늘의 뭉게구름과 언제나 환하게 반가이 맞아주는 야생화 덕분에

행복한 대간길이었습니다.

 

* 언   제 : 2016.07.09(05:15~12:20) 맑고 무더운 날씨

* 얼만큼 : 20km, 7시간

* 누구랑 : 천토산 대간3기팀 50명

* 어디를 : 여원재 ~ 입망치 ~ 갓바래봉(700m, 천대632) ~ 수정봉(805m, 천대633) ~ 노치마을 ~ 큰고리봉(1,305m) ~

              정령치 ~ 만복대(1,438m) ~ 묘봉치 ~ 작은고리봉(1,248m) ~ 성삼재

 

 ▲ 이번 구간 최고봉 만복대~ 풍수지리적으로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만복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며, 사방으로 복을 내려주는 봉우리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가을에는 전형적인 초가지붕을 연상케 한다고 할 만큼 복스럽게 생긴 모양새다. 거대한 젖무덤처럼 부드럽게 솟아 오른 만복대는 광활한 억새 군락지를 이루고 있어 가을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 산행지도

 ▲ 큰고리봉을 오르는 된비알이 장난아니다.

 ▲ 여원재 들머리

 

 ▲ 새벽인데도 땀이 줄줄흐른다. 오늘 땀깨나 흘릴 듯~

 

 ▲ 갓바래봉

 ▲ 무더운 날씨지만 이런 소나무 숲길은 넘 좋다.

 

 

 ▲ 입망치~ 수정봉 북쪽, 이백면 과립리 동쪽, 운봉읍 행정리 서쪽에 위치한 고개다. 입망치는 과립리와 연관된 이름으로 ‘서서 멀리 보이는 곳’이라는 뜻이다. 수정봉에 성터 흔적이 보이는데 예전에 망루가 있었다고 한다.

 ▲ 수정봉 정상~ 여원재와 주촌리 사이에 가장 높은 봉우리다. 서쪽의 남원방향은 지대가 매우 낮은 반면 동쪽의 운봉은 고원분지에서 지대가 매우 높으면서도 편편하다. 정상 주변에 성터가 있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옛날에 이 산에 수정광산이 있었다 하여... 수정은 보석의 일종으로 귀하게 여겨진다. 수정봉은 귀하므로 지켜져야 할 곳이라는 존재의 가치를 지명으로 사용하고 있다.

 

 

 

 

 

 ▲ 피톤치드 가득한 소나무 숲길은 이어지고...

 

 

 ▲ 명물 고인돌 바위

 ▲ 노치마을로 내려서기 전에 250년 수령의 보호수 소나무 4본이 있다.

 

 

 ▲ 이곳에서 제사를 모시기도 하는 가 보다.

 

 

 ▲ 멋진 소나무를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 마을엔 사과나무가 한참 익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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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홍수에도 넘치지 않으며 물 맛 좋기로 소문난 대간길 명소 노치샘~

 ▲ 병을 씻어주는 신비로운 성수...

 

 

 

 

 ▲ 한 바가지 마시고, 또 담고...

 ▲ 마을 어귀에 핀 호박꽃

 ▲ 탐스런 다래도 익어가고...

 

 

 

 ▲ 노치마을~ 가재마을이라고도 하며, 남원시 주천면 덕치리, 백두대간 마루금이 지나는 유일한 마을이다. 동쪽은 운봉읍, 서쪽은 주천면에 위치해 한 집안에서도 행정구역이 갈리는 곳이다. 그래서 주천 부엌에서 밥을 지어, 운봉 안방에서 밥을 먹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물 역시 한 마을에서 낙동강과 섬진강으로 나뉜다.

이 마을에는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홍수에도 넘치지 않으며, 물맛 좋기로 소문난 노치샘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 샘이 스님들이 판 것으로 여긴다. 6.25가 터지고 장티푸스가 돌 때도 이 샘물을 마신 사람만은 무사했다고 한다. 이 마을을 지나가는 대간꾼들만 일년에 4천여명. 노치마을의 당산 소나무에게 인사하지 않은 사람, 노치샘물을 마시지 않은 사람은 백두대간을 지났다고 할 수 없다 한다.

蘆峙. 갈대 노, 언덕 치. 이 마을에는 갈대가 많아서 갈대마을로 불렸다고 한다. 갈대의 전라도 사투리가 ‘갈재’. 이것이 다시 가재로 된 것으로 보인다.

6.25때는 지리산 공비토벌 작전으로 모두 불태워졌던 아픔이 있는 마을. 마을 뒷산에는 삼국시대 축조된 노치산성이 있다.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써 중요한 방어지역이었으며, 아영면 아막성에서 정령치 고리봉의 산성까지를 이어주는 기점이다.

 ▲ 노치마을 회관옆에 50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한반도 모형의 대간 기념비가 있다.

 

 

 

 

 ▲ 노치마을이 대간을 통과하는 유일한 마을이란다.

 

 ▲ 노치마을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

백두대간 지리산 정령치(1172m)를 지나 고리봉(709m)아래 노치마을에서 백두대간 환경 대탐사팀은 새로운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일제는 1910년대 이곳에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는 다른 전혀 새로운 방법으로 백두대간과 지리산의 맥을 끊은 사실이 밝혀졌다. 

행정구역상 남원군 주천면 덕치리(회덕마을과 노치마을이 합쳐짐)에 속하는 노치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덕음산은 남으로 고리봉을 연결하며 지리산으로 이어지는데 노치마을을 지나 고리봉으로 올라가는 능선에다 일제는 백두대간과 지리산을 인위적으로 단절시켰다는 것이다. 일제는 이곳에 길이 100m, 폭 20m, 깊이 3~4m의 규모로 능선을 가로지르는 웅덩이를 판 후 이곳에다 돌로 만든 볼트형(여섯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2개 1조로 이를 연결할 경우 거대한 잠금장치가 되어 능선의 맥을 차단 함, 위 사진 참조) 잠금장치를 하여 백두대간과 민족정기를 끊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돌은 2개 1조로 되어 있으며 두 개를 합칠 경우 가로 1,6m×세로 1.6m의 사각형이 되며 가운데는 둥근 원형이 되는 잠금장치이다. 일제가 이러한 방법으로 백두대간과 지리산 사이의 맥을 차단한 것은 이곳의 지형적 특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부터 이곳에서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덕음산- 고리봉으로 이어지는 이곳은 지리산이 사람으로 비유하면 머리에 해당되고 이곳이 바로 목 부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제는 바로 목 부위에 숨통을 옥죄는 거대한 석물로 제작한 잠금장치를 함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 마을 사람들의 증언에 의하면 일제가 마을사람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능선을 가로질러 파헤친 후 그곳에 돌을 채워 넣는 작업을 시켰다고 말하고 있으며 앞에서 언급한 석물은 능선의 주요 기가 흐르는 곳을 차단하는 도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이를 ‘방죽’이라고도 부르며 ‘울대’라고도 부르는데 그 지점이 바로 사람의 목울대와 비유해 그렇게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일제는 1910년대부터 백두대간은 물론 한반도의 주요지점에 쇠말뚝을 박거나 인위적으로 길을 낸다거나 하는 방법으로 우리의 정기를 차단했으나 이번에 밝혀진 것처럼 대규모로 거대한 석물장치를 이용한 것이 확인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러한 흔적은 90년대 중반까지 존재하였으나 90년대 중반이후 이 지역에서 대규모 경지 정리가 이루어지면서 ‘울대’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고 이곳에서 나온 석물장치 5개만 수거되어 이곳에 거주하는 주민 신수일씨가 정원석으로 보관하고 있는 것을 탐사단의 탐문조사 과정에서 발견되었다.


 

 ▲ 마을 어귀 벽화에서

 ▲ 마을어귀 도로가에 핀 접시꽃이 환하게 인사한다

 

 ▲ 대간의 마루금이 이 길로 이어진다

 ▲ 뒤돌아 본 노치마을

 

 ▲ 이런 포도농장도 지나고

 ▲ 다시 노치마을을...

 ▲ 신기하다 이 도로가 대간 마루금이라는게... 비가 오면 이 길에서 왼쪽은 낙동강으로 오른쪽은 섬진강으로 물이 갈라진다는 산자분수령인 것이다.

 

 ▲ 지나온 수정봉과 노치마을을 다시한번 돌아보고...

 ▲ 노치마을을 알리는 마을 입구 ~

 ▲ 가야할 방향의 도로~ 큰고리봉과 저 멀리 만복대도 보인다.

 ▲ 이런 도로를 약2km 이상 걸어가야한다.

 

 ▲ 오른쪽에 선유산장이 있고...

 ▲ 앞의 다리를 건너지 않고 왼쪽으로 돌자마자 바로 능선을 오른다.

 ▲ 이런 멋진 소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 무슨 이름이 있을텐데... 날카롭고 매서운 독수리 부리를 닮았다.

 

 ▲ 장난아닌 된비알에 일월비비추가 반갑게 맞아주며 힘내라고 응원한다.

 

 ▲ 고기리에서 약3.2km의 된비알을 올라서니 멀리 천왕봉이 구름에 가려있다.

 ▲ 왼쪽으로 세걸봉과 바래봉이 조망되고...

 ▲ 오른쪽으로는 만복대가 ...

 ▲ 큰고리봉이다

 ▲ 왼쪽 바래봉 방향과 오른쪽 반야봉, 만복대까지 파노라마

 

 

 

 

 

 

 

 ▲ 정령치와 만복대가 ... 날씨가 넘 맑다

 ▲ 만복대 방향 파노라마도 함 담아보고...

 

 ▲ 큰고리봉을 내려서면서...

 ▲ 지금 지리산 서북능선은 일월비비추가 몽우리를 터트리기 위해 한창이다.

 ▲ 산수국도 반갑게 맞아주고...

 

 

 

 

 ▲ 큰까지수염도 인사를...

 ▲ 지리산 주능선을 바라보고 있는 원추리

 

 ▲ 파란 하늘에 비친 원추리의 노란색이 넘 곱다

 ▲ 털중나리도 고개 숙여 인사하고...

 ▲ 기린초도 한창이다

 ▲ 큰뱀무도 아름다운 자태를 뽑내고...

 ▲ 곰딸기도 꽃망울을 영글고 있다.

 

 

 ▲ 하늘나리~ 꽃치 하늘을 보며 핀다고 하여...

 

 ▲ 원추리

 

 ▲ 아이리스 꽃창포 꽃망울

 ▲ 자줏빛 색이 넘 멋지다.

 

 

 

 ▲ 무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아이리스~ 한참을 바라본다.

 

 ▲ 언제나 겸손한 털중나리

 ▲ 노란 꽃잎이 넘 아름다워 담고 또 담는다.

 ▲ 개망초도 자기를 쳐다봐 달라고 한다.

 

 ▲ 하늘나리

 ▲ 좁쌀풀

▲ 기린초 

 

 

 ▲ 정령치 동물이동로 설치 공사중이다.

 

 ▲ 정령치 휴게소~ 이곳에서 아침을 먹고...

 ▲ 인증샷도 남기고...

 ▲ 정령치는 정령치는 주천면 고기리에서 산내면 달궁 부락으로 넘어가는 지리산 줄기의 고개로, 황령치(黃嶺峙)와 함께 마한의 별궁을 지키던 중요한 곳이었다 하는데 이곳은 고개 마루가 운동장만큼이나 넓어 이에 대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전설> 마한의 별궁을 방어하기 위해 황령치와 정령치에 성을 쌓고 정씨 성을 가진 장군과 황씨 성을 가진 두 장군이 각각 지키고 있었는데, 정 장군이 지키던 이 정령치에 마을을 만들고자 그의 신통력을 써서 손바닥으로 고갯마루를 쳐서 주위의 높은 산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
이리하여 산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 앉기 시작하는데 운봉에 사는 어느 아낙이 저녁을 짓고 있는데 천지를 올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리므로 괴이하게 여겨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정령치쪽 높은 산들이 탕탕 내리치는 소리에 맞추어 빙빙 돌면서 조금씩 움직이므로 무심결에 "어메 산이 가네이!"하고 외치면서 들고 있던 부지깽이부엌 문턱을 치니 그 순간 정 장군이 내리치는 소리에 맞춰 움직이던 산들이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아 다시는 움직이지 않아 고갯마루가 넓어지려다 말았다 한다.
6.25 전만 해도 정 장군의 손바닥이 찍힌 바위가 달궁마을 앞까지 굴러 내려왔다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고 다만 정 장군이 쌓았다는 산성만이 고리봉 능선에 약 20m 정도 남아 있어 옛 전설(마한의 별궁설)을 전해주고 있다. 현재는 이 고개를 정령치(鄭嶺峙)라 하지 않고 정령치(正嶺峙)라 고쳐 부르고 있다.

 

 

 ▲ 선두팀 단체사진

 

 

 ▲ 공사중인 터널

 ▲ 만복대로 오르는 계단

 ▲ 딱총나무 열매

 

 ▲ 만복대

 ▲ 갑자기 구름이 몰려온다

 ▲ 둥근이질풀

 

 ▲ 지나온 서북능선

 

 

 ▲ 만복대에서 가야할 성삼재 방향

 

 ▲ 왼쪽에서 구름이 몰려오지만 능선을 넘지 못한다. 마루금에 걸린 구름이 장관이다.

 ▲ 만복대 선두팀 단체사진

 ▲ 나도 인증샷 남기고... 풍수지리적으로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만복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도 하며, 사방으로 복을 내려주는 봉우리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가을에는 전형적인 초가지붕을 연상케 한다고 할 만큼 복스럽게 생긴 모양새다. 거대한 젖무덤처럼 부드럽게 솟아 오른 만복대는 광활한 억새 군락지를 이루고 있어 가을 풍경이 특히 아름답다.

 

 ▲ 반야봉과 노고단 방향 파노라마

 ▲ 지나온 큰고리봉과 바래봉 방향 파노라마

 

 

 ▲ 만복대는 지금 비비추 군락을 이루고 서로 앞다퉈 꽃망울을 터트리려 하고 있다.

 ▲ 여유있게 한참을 놀다가고 싶은데... 선두팀은 어디까지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 만복대를 내려서면서

 ▲ 뭉게구름 걸린 마루금을 배경으로

 

 

 

 ▲ 돌양지꽃

 ▲ 잠자리 앉은 비비추~

 ▲ 파란 하늘 배경으로

 ▲ 날아가 버리지 않게 조심스럽게...

 

 ▲ 만복대 노루오줌은 그 색깔이 넘 곱다.

 ▲ 어떻게 이렇게 붉을 수 있는지...

 ▲ 구름을 배경으로 비비추도 담아보고...

 ▲ 자줏빛 자태를 뽑내는 꽃창포도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 공기돌 바위가 굴러 내릴 듯~

 

 ▲ 묘봉치

 ▲ 야생화랑 데이트하느라 한참을 뒤쳐졌는데 선두를 따라잡기 위해 달려오니 얼려온 화채를 먹고 있다. 그래도 먹을 복은 있나 보다.

 ▲ 정신없이 폭풍흡입하고... 이렇게 맛있는 빙수는 없을 거다. 한여름 천고지 넘는 산에서 먹는 빙수 맛~ 먹어보지 않은 사람을 말을 말어~~ㅋㅋ

 

 

 ▲ 이제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 작은 고리봉이다.

 ▲ 성삼재 도로와 만나는 곳 이정표

 ▲ 도로를 따라 성삼재로 오른다.

 

 ▲ 성삼재를 배경으로~ 지리산 주능선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고개다. 지리산 종주의 기점으로 이용된다. 861번 지방도로가 올라간다. 정상에는 단정한 휴게소와 식당이 있다. 이곳에 있는 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서북능선인 만복대까지 관리한다. 일반 등산객들은 종석대를 거치지 않고 코재로 직접 올라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돌을 다듬어 바닥에 끼워 맞춘 돌포장 도로가 길이 크게 꺾이는 지점까지 올라간다. '3개의 재(고개)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성삼재는 삼한시절의 전적지로, 마한군에게 쫓기던 진한왕이 달궁계곡에 왕궁을 짓고 피난하여 살 때였다. 북쪽 능선에 8명의 장수를 두어 지키게 한 곳이 팔랑재요, 동쪽은 황장군에게 지키게 하였으므로 황영재, 남쪽은 성(姓)이 각각인 세 사람의 장수를 보내어 지켰다 해서 성삼재라 하였다 한다.

 

 ▲ 성삼재휴게소와 우리 버스

 

 ▲ 뒷풀이 식당

 

 ▲ 버섯전골이다

 

 

 

 

 

 

 

이제 마지막 한 구간이 남았다.

오늘 보다 더 더운 8월인데, 걱정이 되긴하지만 그래도 기다려 진다.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이니까~~~